클루지: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우선 책의 부제가 마음에 안 든다. 원문대로 ‘인간 마음의 불완전한 설계에 대한 통찰’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개리 마커스는 ‘클루지’를 ‘대충 만든 해결책’이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 책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 바로 이 ‘클루지’처럼 얼마나 불완전하게 진화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또 하나의 뇌과학 책이겠거니 했는데, 읽다 보니 꽤나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창조론의 반대편에 서서 진화론을 펼치는 진부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우리의 뇌가 완벽한 설계가 아닌 진화 과정에서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부실한 결과물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뇌는 우리의 마음이기도 한데, 우리가 왜 그렇게 비합리적인 결정을 자주 하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동차 사고보다 뱀이나 거미를 본능적으로 더 무서워하는데, 사실 이는 굉장히 비합리적이다. 뱀이나 거미보다 교통 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이런 본능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현대 사회가 아닌 옛 환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화 과정에 있어 아주 오랫동안 인간에게 해를 끼쳤던 뱀이나 거미를 더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뇌과학 책들처럼 저자는 행복에 관해서도 이야기 한다. 우리는 돈이 많아지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일본에서는 30년간 수입이 5배나 늘었는데도 행복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행복에 있어서도 ‘클루지’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 SNS나 게임은 이런 ‘클루지’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SNS와 게임에 중독되는 현상이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 뇌의 보상 체계를 자극하도록 설계된 ‘과상 자극’이라고 하는데, 진화적으로 우리 뇌가 이런 강한 자극에 저항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 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뇌와 마음의 이런 허술한 점을 고려해 아래와 같은 13가지 제안을 한다.
1. 대안이 되는 가설들을 되도록 함께 고려하라.
2. 문제의 틀을 다시 짜고 질문을 재구성하라.
3.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가 아님을 명심하라.
4. 여러분이 가진 표본의 크기를 결코 잊지 말라.
5. 자신의 충동을 미리 예상하고 앞서 결정하라.
6. 막연히 목표만 정하지 말고 조건 계획을 세워라.
7. 피로하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
8. 언제나 이익과 비용을 비교 평가하라.
9.누군가가 여러분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상상하라
10. 자신에게 거리를 두어라.
11. 생생한 것, 개인적인 것, 일화적인 것을 경계하라.
12.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13. 합리적이 되도록 노력하라.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게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한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책은 우리가 왜 이렇게 불완전한지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도 담고 있어서 더욱 가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뇌과학 책들을 읽어 본 독자들에게는 다소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책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첫 독서 포스트